미국 유학생으로서 정신건강 상담 받기
글쓴이 Nari Yoo
20대 중반에 박사과정을 위해 미국 땅을 밟은지 어느덧 4년차, 나는 JFK 공항에서 맨하탄에 들어가던 길의 설렘과 두려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익숙한 캠퍼스를 벗어나 낯선 이국 땅에서의 도전은 분명 쉽지 않았다. 제2외국어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을 쓰며 매순간 느끼는 언어 장벽,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것 같은 문화차이, 가족과 친구들과의 거리감은 유학 생활의 즐거움 이면에 늘 따라다니는 그림자였다. 특히 팬데믹 이후 화상 통화가 일상화되고,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쉽게 시청할 수 있고, 한인 마트를 통해 한국 음식을 구하는 것이 수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문화 차이와 언어장벽에서 스트레스는 여전히 유학생활의 큰 도전이다. 한국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 혹은 친구들의 중요한 인생의 순간에 함께하지 못하고, 이들과 점점 멀어지는 듯한 '모호한 상실 (ambiguous loss)'의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독함을 안겨준다. 더욱이 유학생으로서의 불안정한 신분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마음의 평안을 찾기 어렵게 만든다. 유학생활의 또 다른 어려움은 좁은 사회적 연결망 안에서의 관계 문제다. 타지에서 친구, 애인, 파트너와의 갈등은 크게 느껴지고 “나는 무엇을 위해 먼 이국에서 이렇게 살아가는가”하는 근원적 외로움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나만의 ‘금쪽상담소’에서 마음의 근육 기르기
많은 유학생들이 이런 상황에서 자기계발서 및 심리학 서적을 탐독하고 정신건강 관련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며 ‘자가치료(self-care)’를 한다. 하지만 이런 자가치료를 통해 자신의 상황에 딱 맞는 조언을 얻기란 쉽지 않은데다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우울과 불안이 더욱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이 바로 심리상담이다. 상담, 그것도 미국에서 받는 상담이라니.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운 마음이 들겠지만, '오은영의 금쪽상담소’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낯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만의 비밀 금쪽상담소에 간다는 마음가짐 하나면 된다. 막상 상담을 시작하고 나면 스스로의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또 정신건강전문가의 시선에서 스스로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상담소에 직접 갈 시간이 없고, 상담소에 가는 것이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대부분의 상담사들이 온라인 상담을 제공하게 되었고 이러한 문화가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상담을 받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예약을 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본인의 랩탑을 통해 접속하는 것 뿐이다. 나 역시 상담을 처음 받기 전에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이 시간을 최대한 잘 쓸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썼다. 하지만 상담사들은 내담자들이 편안한 상태에서 스스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을 오랫동안 받은 사람들이고, 그것을 이끌어주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믿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이나 근황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좋다.
미국에서 유학생으로 상담받는 법: 검색 방법, 비용, 그리고 언어까지
A. 학교 상담센터 이용하기
한국에서 학교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기 위해서 긴 대기를 해야하고, 상담에 대한 보험 적용도 전혀 되지 않는 것에 비하면, 미국에서 상담 받기가 한국보다 수월한 면이 많다. 대부분의 미국 대학들은 정신건강 및 상담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각 학교 웹사이트의 'counseling support' 페이지를 찾아보면 유학생을 위한 맞춤 상담 프로그램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학교 상담센터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자살 사고와 같은 위기 상황에 이용할 수 있는 위기 상담, 개인 상담, 집단 상담 등이 있다. 위기 상담의 경우 학교 crisis support, mental health crisis 등으로 검색하면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개인 상담의 경우에는 큰 위기가 있지 않다고 해도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신체건강에 큰 문제가 없어도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 것처럼, 정신건강 검진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예약하고 성격검사, 진로검사 등을 통해서 본인의 성향과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좋다. 이 과정에서 필요가 확인된 경우 상담사와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 건강한 대처 기술을 발전시켜나갈 수도 있다. 개인 상담이 부담스럽다면 비슷한 상황에 있는 참여자들과 함께 하는 집단 상담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학교 상담센터에서 제공하는 집단 상담의 주제는 주로 학업에 대한 불안, 사회불안 등 학교 생활에 도움이 되는 주제들과 본인의 정체성에 맞는 서포트 그룹까지 다양하다.
B. 학교 밖 상담사 이용하기
학교 상담으로 해결이 어려운 경우에는 장기 상담을 위한 외부 연계도 받을 수 있다. 혹은 여러 개인적 이유로 학교 상담이 부담스러운 경우에는 PsychologyToday나 Zocdoc과 같은 상담사 검색 사이트에서 내가 가진 보험으로 커버되는 상담사를 검색할 수도 있다. 아직 정신건강 전문가에 대한 법이 없는 한국과 달리 미국의 정신건강 전문가는 주에서 인정받는 면허를 취득하기 때문에, 학생 보험 등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보험 네트워크의 적용 범위나 환급 조건은 상담사나 보험사에 문의하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원하는 상담사가 있는데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경우, 해당 상담사가 ‘Sliding Scale’을 적용하는지 확인해보자. 상담사가 내담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서 상담료를 다르게 받는 것인데, 유학생들의 경우 소득이 없기 때문에 이를 적용받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상담을 받아볼수도 있다.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번의 상담에 실망하지 않는 것이다. 상담사마다 강점이 다르고, 이들이 적용하는 주요 상담기술도 다르기 때문에 나에게 잘 맞거나 잘 맞지 않는 상담사가 있을 수 있다. 처음 했던 상담사와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허락하는대로 두 세명의 상담사를 더 시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많은 상담사 검색 사이트들에서는 ‘한국어-영어’ 이중언어가 가능한 상담사들을 필터링하여 검색할 수 있는 옵션도 있다. Mustard Seed Generation에서는 한국인 상담사 목록을, Asian Mental Health Collective에서는 아시안 상담사 목록을 조회할수도 있다. 만약 영어로 상담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상담사를 예약하여 본인이 편한 방식으로 두 언어를 섞어 쓰면서 상담을 받아볼수도 있다. 한국어로 상담을 제공하는 것이 유창하지 않은 상담사라도, 클라이언트가 한국어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본인이 편한 방식에 따라서 상담사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다. 나의 경우도 하루종일 제2외국어로 공부하고 일하고 난 후에 상담까지 영어로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많았다. 또한 영어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와 서러움을 또다시 영어로 번역해 표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때도 있었다. 이런 경우 한국어가 가능한 잘 맞는 상담사를 찾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이중문화, 혹은 이중언어 경험이 있는 상담자들에게는 본인이 느낀 미국 생활 적응의 어려움, 언어장벽으로 인한 스트레스, 유학생으로서의 고충 등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약점이 아닌 강점
미국에서는 정신건강서비스를 대하는 사회적 인식이 한국에서보다 더 긍정적일뿐더러 덜 낙인화되어 있다. 심지어 데이팅 어플에서 ‘상담을 받는다 (In Therapy)’는 것이 매력 포인트로 작용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정신과에 가고, 상담치료를 받는 것이 ‘기록’으로 남아서 이것이 미래에 학교에 진학하거나, 취업준비를 할 때에 불이익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곤 한다. 상담치료 그 자체로 약물처방이 되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2022년 한해동안 미국인의 23%가 상담 혹은 정신건강치료를 받았다고 응답할 만큼 미국에서는 상담을 받는 것이 흔한 일이다. 미국의 테크 기업들은 직원들이 정신건강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기업 내에 상담사(on-site therapist)를 채용하고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에서 유학한 후 구글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는 김은주 디자이너 역시 구글 사내에서 심리상담을 받은 것이 전환점이 되었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문제가 있는 한국인들은 여전히 상담치료를 비롯해 정신건강에 관련하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두렵게 생각하거나 중증정신질환자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심리상담에 대한 오해로 인해 치료 시기를 놓치고 우울이나 불안 등이 만성화되고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홀로 집에서 울고 있는, 혼술로 마음을 달래고 있는, 정신건강 관련 유튜브 영상을 보며 공감하고 있는 주변의 많은 유학생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힘든 유학 생활, 혼자 감당하기엔 때로는 버거울 수 있다는 것을. 필요한 때에 도움을 구할 줄 아는 것은 당신의 약점이 아닌 강점이라는 것을. 당신의 답답한 마음이 친구들과의 수다로 혹은 동네 맛집에서의 한끼 식사로 덜어지지 않는 종류의 것이라면, 상담을 통해 본인의 어려움을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또 어떻게 대처해나가면 좋을지 마음의 근육을 길러보는 것은 어떨까.
글쓴이 소개
유나리-뉴욕대 사회복지학 박사 후보이며, 미국과 아시아의 지역사회 규모의 역학관계를 이해하고, 기술의 발전을 활용해서 인종적 소수자들과 이민자들의 웰빙을 증진시키는데 초점을 맞춘 연구를 진행 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기술을 동반하고 지역사회에 기반한 문화 및 언어적으로 관련성이 있는 개입 방법들과 서비스를 개발 하는 것을 목표합니다. 개인 시간에는 여행, 독서,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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